▶ '박쥐', 환호 속 레드카펫 vs 충격 속 스크리닝…쿠엔틴 타란티노, 관객으로 참석
[스포츠서울닷컴ㅣ칸(프랑스)=특별취재팀] 비 내리는 15일(현지시간) 밤 10시. 할리우드 감독 쿠엔틴 티란티노가 뤼미에르 극장에 나타났다.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터지는 플레쉬에 손을 흔들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할리우드 스타 머라이어 캐리와 래니 크레비츠가 뤼미에르 극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레드카펫 위로 캐리의 히트곡 '히어로'가 울려 퍼졌고, 둘은 나란히 손을 흔들며 극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감독과 가수가 영화 '박쥐'의 레드카펫에 나란히 입장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이날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10시 20분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등 5명이 뤼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에 섰다. 이날 행사는 6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박쥐'의 공식 스크링닝을 축하하기 위한 것. 5명은 빗속의 레드카펫을 천천히 걸으며 칸의 밤을 즐겼다.
◆ 박쥐, 빗속의 레드카펫을 날다
영화 '박쥐'에 대한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비가 내리는 늦은 밤에도 불구 수많은 팬들은 뤼미에르 극장 앞 크로와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사회자가 박찬욱,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등 배우를 소개할 때 마다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박쥐'의 주인공들은 팬들의 함성에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영화 '밀양'과 '놈놈놈' 등을 통해 이미 레드카펫을 경험한 송강호는 플레쉬가 터지는 곳을 향해 자연스레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송강호는 이날 오후 가진 인터뷰에서 "칸에 초청받은 것 자체로 수상 이상의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칸 레드카펫이 평생의 꿈이라던 김해숙도 만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날 전통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는 레드카펫에 발걸음을 내딪을 때 마다 감동에 젖어 있었다. 김해숙 역시 오후 인터뷰에서 "칸에 도착하자마자 뤼미에르 극장을 찾아갔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며 레드카펫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김옥빈과 신하균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경험자인 박찬욱 감독, 송강호와 달리 쉴 새 없는 플레쉬 세례에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잠시후 송강호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 역시 칸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레드카펫을 가득 메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충격과 환호의 스크리닝
10여분간의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고 '박쥐'의 주인공들은 공식 스크리닝이 열리는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입장했다. 극장 안에 들어서자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수많은 관객들은 기립을 해 그들의 입장을 반겼다. 그 중에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있었다.
'박쥐' 팀이 자리에 앉자 오후 10시 40분부터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상영 시간동안 관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 초반 대다수의 관객들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에 박장대소하는 분위기였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집중력을 갖고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주인공 현상현(송강호 분) 신부가 뱀파이어로 변신하고 피를 탐하는 장면이 연이어 등장하자 몇몇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한 커플은 자리를 뛰쳐 나온 뒤 "테러블"이라고 말했고, 프랑스에서 온 한 여자관객은 "쇼크를 먹었다. 꺼림직하다"며 울면서 극장을 떠났다.
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박찬욱 감독이 선사하는 새로운 영상 세계에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일부 관객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또 일부 관객은 박찬욱과 송강호 등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잘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박쥐는, 여전히 논쟁중
공식 스크리닝을 마친 뒤 스포츠서울닷컴 취재팀은 영화를 관람한 외신 기자들을 통해 '박쥐'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예술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향을 지닌 프랑스 언론들은 대체로 '박쥐'에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프랑스 라디오 매체 '프랑스 컬처'의 안토니오 길롯 기자는 "구원과 복수, 죄의식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이라며 "강렬하고 매혹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몇몇 유럽 언론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ANF NEWS AGENCY의 기자 뮤랏 아크다스는 "마치 2~3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혼란스럽다"며 "전반부는 치정멜로 후반부는 뱀파이어 호러영화 같았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또 스위스의 필름 바이어 다이엘 트레이첼러씨는 "흥미로운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 잔인한 것이 문제"라며 "예술성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상업적으로 통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밖의 유럽 국가에서 호평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외신 언론들의 '박쥐'를 향한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개막 3일간 공개된 4편의 경쟁 부문 상영작들의 반응이 예상밖으로 저조했던 것을 고려하면 '박쥐'를 향한 상반된 반응은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5번의 시사회를 포함해 공식 스크리닝 상영까지 마친 '박쥐'는 이제 심사위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 2004년 '올드보이'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오른 박찬욱 감독이 다시 한번 칸에서 웃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오는 24일 폐막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칸영화제 특별취재팀>
취재=이명구·임근호·송은주·김지혜기자
사진=김용덕·이승훈기자, 김주경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