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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혁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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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종로경찰서 부근 큰 길에 면한 2층 한옥상가 앞에는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기모노 차림을 한 일본인들이 서성이고 있다. 2층 유리창호는 색다른 볼거리인양 지나던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본다. 1930년대 종로 관훈동 소재 2층 한옥상가 앞 길거리 표정을 상상해 본 것이다. 1930년이라면 일본이 강점한 지 20년. 시내 한복판의 왜색 짙은 거리가 금방 떠오른다. 인근에는 경찰서가 있어 꽤나 혼잡했을 것이다. 한옥상가 1층은 좌우 길이가 32칸이다. 한개 점포가 4칸 정도이니 총 8개 점포가 있다. 2층은 난간으로 둘러쳐 있으며 길 쪽으로 낸 사무실 유리는 밝아 보인다. 지붕에 기와를 얹은 2층상가 자체가 명물이다.
내친김에 2층 상가 뒤에 자리한 한옥에 들어가 본다. 상가 정면 왼쪽을 돌아 솟을대문 앞에 섰다. 이외에 기능이 다른 문이 2개 더 있다. 일단 대문을 통과하니 큰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이 기거하는 안채가 있고 왼쪽으로 접객용 방이 있는 사랑채가 있다. 대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왼쪽 별채로 들어가는 문이 또 있다. 한옥 내 별도로 만든 문이다. 안채의 남쪽으론 아래채가 있다. 그곳에선 아랫것들이 툇마루에서 상가 물건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한옥은 전체 50칸 정도로 규모가 크다. 기와를 얹은 고샅길 담들은 각 건물의 구획을 긋는 역할을 하고 있다. 2층 한옥상가는 상업기능을, 한옥은 주거기능을 담당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지어진 한옥들은 2층 상가의 살림집인 셈이다. 19세기와는 다른 20세기 초 시내 상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상복합건물이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요새 1920, 30년대 한옥과 2층 상가를 본 적이 있는가? 특별한 문화재가 아니고선 도시화의 진전 속에 자취를 감춰버린 지 벌써 오래다. 상가 자체가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이유로 보존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옥상가를 포함한 근대건축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일제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옥과 연계된 2층 상가 또한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므로 2층 한옥상가와 한옥은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문화와 당시 상업기능의 공존을 보여주는 것으로 건축사적, 문화적으로 보존해야 할 기념물이다.
지난 9월말 30년대 한옥과 2층상가가 덕성여대 쌍문동 캠퍼스에 원형모습으로 이전 복원됐다. 이 건물은 본래 종로 경찰서 인근 현 율곡로에 있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그 자리에 복원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이제야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인 김경섭 학예사는 "이번에 복원된 한옥은 근대도시 건축의 연구와 전승에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대학당국은 이 건물에 '덕우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한옥체험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살려 사랑채는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숙박장소로, 안채는 학생들의 생활관으로, 2층상가 등은 대ㆍ소강의실과 사무실로 기능을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학 구내에서 근대 한옥과 상가의 복원은 매우 이례적이며 반갑다. 글로벌 대학을 지향하면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