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의 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2월 12~28일), 남아공 월드컵(6월 12일~7월 11일), 광저우 아시안게임(11월 12~27일) 등 굵직한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가 1년 내내 국민적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영화,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도 국제 스포츠대회와 결합한 콘텐츠와 이벤트 마련에 부심 중이다.
▶영화
CJ CGV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을 비롯해 국민적 관심이 모아질 동계올림픽 중계를 추진 중이다. 변수는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한 중계권 문제다. CJ CGV 홍보팀 이상규 팀장은 "지난 2006년 월드컵뿐 아니라 지난해 이종격투기 K-1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계 등 스포츠의 극장 콘텐츠 활용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됐다"며 "이젠 단편적인 이벤트 차원이 아니라 극장 콘텐츠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본격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K-1 결승전을 중계하면서 CGV는 관람료 1만9000원을 책정했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관객 1인당 1만2000원을 받았다. 올해도 중계권 협상 결과에 따라 '유료 콘텐츠'로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주요 경기를 생중계할 방침이다.
디지털 상영 환경이 발전하면서 극장의 콘텐츠가 스포츠, 공연, 게임 중계 등으로 다변화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해 유럽 프로축구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 리그를 생중계했던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홍보팀 임성규 과장도 "이제 극장이 영화 콘텐츠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며 "스포츠 중계도 공연, 게임과 함께 콘텐츠 다변화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씨네마와 메가박스 등도 월드컵 중계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두 회사는 일단 영화상영과 패키지로 묶은 중계나 회원초청 무료 관전 등을 검토 중이다.
극장과 달리 영화사들에 월드컵과 같은 전 국민적 스포츠 이벤트는 일단 개봉 일정의 변수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사회적 이슈나 스포츠 이벤트로 전체 관객수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개별 영화의 흥행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한국전쟁 소재의 대작 '포화 속으로'의 개봉시기를 고민 중이다. 6월 25일 전후로 개봉하는 것이 작품 성격과 취지에 가장 맞지만 자칫 월드컵 응원열기에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쇼박스는 아예 축구 소재의 한국 영화로 월드컵 응원열기와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복안이다. 월드컵 개막 한 달 전인 오는 5월 한국영화 '맨발의 꿈'을 개봉할 예정.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신발도 없이 맨발로 축구를 시작해 국제대회 2년 연속 우승을 일궈낸 동티모르의 유소년 축구단과 이 팀을 이끈 한국인 감독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희순이 가난한 동티모르 소년들을 지도하는 감독 역할을 맡았고 '화산고' '크로싱'의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방송
굵직한 국제 스포츠대회는 방송사엔 호재다. 각 기업이 올림픽과 월드컵 등 주요 국제 스포츠경기에 마케팅 예산을 확대함에 따라 시청률과 관계없이 광고수익은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중계권 협상과 '시차'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과의 시차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주요 경기가 열렸던 저녁 황금시간대 다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무더기 결방됐다.
올해는 다르다.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동계올림픽 주최국인 캐나다는 한국과의 시차가 각각 7시간, 17시간이다. 주요 경기가 국내 새벽과 낮시간대에 벌어져 기존 프로그램과 편성 경쟁은 비교적 덜할 전망이다. 밴쿠버 올림픽 중계권을 독점 보유하고 있는 SBS는 오전 3시부터 7시까지 낮 경기를 중계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저녁 경기를 주로 중계한다는 방침을 최근 세웠다. 인기 프로그램의 결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이다. 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주요 경기는 국내 황금시간대와 겹칠 가능성이 높지만 월드컵이나 동계올림픽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져 대거 결방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득이하게 주요 프로그램을 결방하더라도 방송사로선 아쉬울 것 없는 장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예능,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결방했지만 광고 수익 측면에선 오히려 특수를 누렸다. 이재훈 MBC 광고업무부장은 "광고주들이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행사를 고려해 광고 예산을 특별 편성한다"면서 "매년 2월 말에서 3월께 각 기업의 예산이 확정돼 아직 정확한 추이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방송사로선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계권의 향방이다. SBS는 올해 대회를 포함해 2014년까지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피겨스케이팅 주요대회(세계선수권, 그랑프리시리즈, 4대륙 선수권) 중계권 독점계약을 끝낸 상태다. MBC, KBS가 SBS와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한 방송사에서 모든 경기를 단독 중계할 수도 있다. 이원구 SBS 홍보팀 차장은 "순조롭게 협의해 중계권을 나누길 희망하지만 각사 내부 사정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SBS 측은 "애초 스포츠마케팅 사들이 중계권을 선점해 방송사에 비싸게 되파는 업계 관행을 바로잡고자 각종 중계권을 선점했다"고 밝혔으나, 타 방송사들은 "SBS가 오히려 중계권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놨다"고 반발했다.
이형석ㆍ김윤희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