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큐브를 소개하는 기사나 문구로 언제 부터인가 ‘예술영화관의 대표 브랜드’라는 꼬리표가 자연스레 따라 붙게 되었다. 2000년 12월 <포르노 그래픽 어페어>(1999, 프레데릭 폰테인)를 개관 작으로 문을 연 첫 해부터 20만에 육박하는 연 관객 수를 기록한 씨네큐브는 거의 개관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자리 매김 했다. 극장의 운영을 책임지었던 백두대간이 직접 수입하고 배급하는 유럽의 예술영화들을 단독 개봉하며 ‘좋은 영화’, ‘수준 높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인식을 관객들에게 심어주면서 씨네큐브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 또한 높아져 갔다. 2001년 개봉한 <타인의 취향>(1999, 아녜스 자우이)은 씨네큐브에서만 5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으며, 프랑스 애니메이션 <브에나 비스타 소셜클럽>(1999, 빔 벤더스)이나 <브로크백 마운틴>(2005, 리안), 그리고 지난 해 화제의 독립영화인 <워낭소리>(2008, 이충렬)도 씨네큐브에서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관객들은 씨네큐브에서 선정한 영화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극장을 찾았고, 또 단골관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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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는 고급 유럽 예술영화의 개봉 외에도 2002년부터 시작한 ‘영화로 떠나는 세계배낭여행’, ‘오컬트 영화제-컬트영화 Big 5', '아카데미영화제 특별전’ 등 극장에서 여는 정기 기획전을 정립시키며, 예술영화관에서도 평소에는 보기 힘든 70-80년대 고전이나 컬트영화들을 대중화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전국에 걸쳐 약 40여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이 운영되고 있는 요즘은 ‘감독과의 대화’나 ‘씨네토크’등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자리가 예술영화전용관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무척 많아졌고 또 정기적 행사로 개최되기도 한다. 하지만 씨네큐브는 개관 이후 비정기적인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꾸준히 열었을 뿐 아니라 예술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이해를 돕는 영화학교나 작품론 강좌를 개설해왔다. 2004년부터 진행해온 ‘씨네큐브 영화학교’에선 장 뤽 고다르나, 키아로스 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은 감독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하거나 영화와 미술의 연관관계를 탐구해보는 강좌를 개설했다. 또한 정성일, 심영섭, 전찬일 등 국내 유명 평론가가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대표작인 <희생>(1986)과 <노스탤지어>(1983)에 대한 작품론을 강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영화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시네마테크로서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사는 지금은 예술영화관객들에게 익숙해진 ‘씨네토크’나 ‘캠퍼스 토크’와 같은 프로그램의 초석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새로운 관객들을 창출하고 교육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예술영화관의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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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은 2009년 8월 31일을 끝으로 씨네큐브의 운영을 마쳤고 다행히 씨네큐브는 문을 닫지 않고 다음 날인 9월 1일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물론 씨네큐브를 운영하는 주체는 바뀌었다. 현재의 운영주체는 태광그룹에서 케이블 방송사업 콘텐츠 분야를 담당하며 영화채널 'Screen', 여성영화채널 ‘cinef'등 8개의 케이블 방송 채널을 운영하는 티캐스트이다. 새롭게 시작한 씨네큐브가 지금까지 상영한 영화들이나 기획전들을 살펴보면서 이전하고 같지만 그러나 다른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씨네큐브에선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일정 정도 이상의 수준을 갖춘 예술영화들을 개봉하고 있고, 한국영화 <페어 러브>(2009, 신연식)의 감독과 배우 무대인사, <클래스>(2008)의 로랑 캉테 감독 및 정성일 평론가와의 관객과의 대화와 같은 이벤트를 하나씩 재개하고 있으며 9월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획전을 개최했다.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는 씨네큐브의 행보를 확실하게 다져준 것은 무엇보다도 씨네큐브의 강력한 특성 중에 하나였던 기획전이라고 여겨진다. 처음으로 포문을 연 기획전은 2009년 9월 말부터 2주간에 걸쳐 진행된 ‘2009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 30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나 국내에선 2009년에 처음으로 소개된 <알제리 전투>(1966, 질로 폰테코르보), 토론토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벨라>(2006,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폴 해기스 감독의 <엘라의 계곡>(2007)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총 7편의 작품들이 본격적인 국내 개봉 전 씨네큐브 관객들과 미리 만났다. 국내 미개봉작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이점에 추석 연휴가 겹치면서 새롭게 시작한 첫 번째 기획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첫 기획전으로부터 세달 후 그동안 씨네큐브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대표작 6편을 묶어서 ‘Red & Red 페스티벌: 열정이라 불리는 그들’이란 제목의 특별전에서 5일간 상영했다. 다시 세 달이 지난 2010년 3월 ‘2009 한국 예술영화의 별들’이란 기획전을 통해 2009년 한 해 동안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던 <똥파리>(2008, 양익준), <낮술>(2008, 노영석),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홍상수), <파주>(2009, 박찬옥) 등 한국 예술영화 8편을 2주간 재 상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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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모든 예술영화 배급사들이 개봉을 원하는 극장인 이점을 살려 앞으로도 엄격하게 선별한 수준 높은 해외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동시에 한국의 예술영화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씨네큐브의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여겨져 안심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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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운영을 시작한 극장 측의 우려와 달리 작년 한 해 씨네큐브를 찾은 관객은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물론 2009년 초 대 흥행을 기록한 <워낭소리>의 관객이 차지한 비율이 꽤 높아서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년 수준의 관객하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자체 평가했다. 숨 가쁘게 7개월을 달려온 씨네큐브가 계획하고 있는 2010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 씨네큐브의 최경미 프로그래머는 기존의 씨네큐브가 가졌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해 가면서 변함없이 좋은 영화를 찾아서 상영할 것이고, 동시에 대표적 예술영화관으로서 새로운 관객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새 프로그램도 고민 중에 있다고 답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해 온 예술영화 관객층이 200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어 조금씩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타 예술영화관들의 고민을 씨네큐브도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지방의 단관 예술영화관들에 비해 씨네큐브는 매우 안정적인 고정 관객층을 유지하고 있어 직접적인 어려움은 덜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 개봉되는 예술영화의 편수가 폭증하면서 예술영화관들의 상영작도 어느 정도는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띠게 되어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하고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은 씨네큐브도 다른 극장들 못지않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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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가 현재 그리고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우선은 차별화된 상영작이라고 한다. 다른 극장에서 가져 오기 힘든 영화들을 기획전이나 정기적인 상영회를 통해서 소개하고, 예전의 씨네큐브가 영화학교나 작품론 등을 통해서 했던 강좌를 다시 개설시키는 것. 그리고 다른 문화와 영화를 극장에서 접목 시키는 것이다. 씨네큐브가 위치한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3층에 얼마 전 개관한 ‘일주 & 선화 갤러리’와 연계한 공동 프로그램도 현재 준비 중이라고 하니, 갤러리와 예술영화관을 동시에 운영하는 영국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처럼 영화와 미술, 그리고 미디어 아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협력 프로그램을 씨네큐브에서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 하나는 현재의 극장 홈 페이지를 개편해 씨네큐브를 찾는 전 연령층의 관객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영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장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영화관 홈 페이지가 상영작이나 시간표를 위주로 한 정보 제공의 기능만 하고 있는데 반해 따로 영화 블로그를 찾지 않아도 씨네큐브 홈 페이지 방문 한 번으로 상영작에 대한 리뷰와 다양한 글들을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원-스탑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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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취재에 응했던 최경미 프로그래머는 ‘씨네큐브가 어떤 극장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직도 씨네큐브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씨네큐브는 없어지지 않았고, 좋은 영화를 트는 예술영화관으로 남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관객들이 씨네큐브에서 ‘문화 충전’과 함께 ‘문화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경미 프로그래머의 답변에서 보인 씨네큐브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새겨진 씨네큐브의 모습이다. 개관 때부터 현재까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씨네큐브를 지원하고 운영하는 대기업도 단기적인 수익 수치가 아닌 장기적인 문화예술의 확산의 측면으로 끝까지 씨네큐브를 바라보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현재의 씨네큐브가 계속 ‘우리들의 씨네큐브’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씨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작품과 시간표 그리고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씨네큐브 홈페이지(www.icinecube.com)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오는 씨네큐브의 중요한 원칙인 상영관 내 음식물 반입 금지와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원칙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 ||
취재·사진 : 최선희 (그냥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