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 역에서 내려 헤맨 적이 있었다. 골목을 가도, 큰길로 나서도 생소하고 궁금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꽤나 어리둥절했었다. 인상적인 골목과 문화재들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이 일종의 끌림과 당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섰다. 그것은 봄날의 손짓이고 유혹이기도 했다.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1호선 종로3가 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곧장 나갔다. 길 끝에 낙원상가가 보였지만, 그곳으로 가지 않고 길 건너 철물점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때 그 골목이 맞았다. 마치 지방도시의 오래되고 낡은 주택가 골목을 옮겨놓은 듯한 그림. 양파 망 같은 초록 망을 분리수거함으로 만들어 대문마다 걸어 놓은 풍경도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슨 라면을 먹고 어떤 음료수를 마셨는지까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알 수 있고, 마치 이집저집 맨살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그냥 빠른 걸음으로 씽씽 걸었다. 골목 끝 우측에는 세탁소가 있고, 좌회전하면 바로 '뜰안'이라는 찻집이 있다. 알고 보니 이 찻집은 영화 [카페 서울]의 촬영지였다.
담벼락에 씌어진 주소를 보니까 누동궁1길, 2길이다. 누동궁길이라……. '궁'자가 들어간 누동궁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1950년 매화가 한창인 3월에 철종 임금의 생가인 누동궁에서 5대 손녀인 이경란 씨가 태어났는데, 뉴욕에 거주하는 의친왕(고종의 2남)의 5녀 해경(66)씨에 의하면 누동궁의 주인은 바로 이경란 씨의 친할아버지인 청풍군 이해승 씨였다고 한다. 바로 몇 발자국 건너 종로세무서를 지나 큰길로 나와 우회전하자마자, 낙원떡집이 있었다. 이런저런 맛집들을 지나자, 수양한의원이 나오는데 그 앞 인도에 "낙원동 17번지 기와집은 우리나라에서 종두법을 처음으로 실시한 관립경성의학교 초대교장 지석영 선생님 집”이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이 다음부터는 예전에 창덕궁 가는 길에 궁금해 했던 곳들이 줄줄이 나온다. 먼저 우리나라 최초 초등학교인 교동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1894년에 관립교동왕실학교로 개교하여 1906년에 관립교동소학교, 1947년에 교동국민학교, 1996년에 교동초등학교로 개명이 돼, 우리나라 초등학교 이름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았다. 윤보선 대통령, [상록수]로 유명한 소설가 심훈, 아동문학가 윤석중, 동요작곡가 윤극영 선생님이 116년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이 학교를 졸업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금시초문이었다.
근처에는 바로 궁이 있는데, 그 궁 안에 덕성여대 종로 캠퍼스가 있었다. 운현궁이 이렇게 나뉘어 쓰이고 있다는 말인가! 운현궁과는 담으로 완전히 차단돼, 다시 나와서 700원을 주고 운현궁 입장권을 들고 입춘대길이 한자로 크게 쓰인 열린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궁금하게 했던 운현궁, 진달래, 철쭉, 모란꽃들이 만발한 운현궁의 봄은 참 평화로웠다. 운니동 98-50, 운현궁에서는 서예를 즐겨하고 가까이 두었던 흥선대원군의 흔적을 돌아보듯 '운현궁 서예 중견작가 초대전'이 6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또한 천안함과 국내 정세 관계로 연기되었던 운현궁의 고종ㆍ명성후 가례의식 및 일요예술마당 행사도 재개된다고 한다. 운현궁의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니 안국역 4번 출구가 보이고, 옆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이 있었다. 여기서 평상시라면 건너편 현대사옥 옆 김수근 건축사무소 '空間(SPACE)'이나 창덕궁에 들렸겠지만 오늘의 일정은 큰길을 건너지 않고, 우회전하여 와룡동 국악의 거리와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떡박물관 등을 가보는 것이다. 곧장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떡박물관, 떡카페 질시루가 한 건물에 있는 복합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윤숙자 소장이 20여 년간 수집해 온 떡과 부엌살림 관련한 유물 2천여 점 중 1천여 점을 상설 전시하는 이곳은 2002년 1월 19일 개관하여 학생과 일반시민,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음식을 알리고 있다.
1층 떡카페 질시루는 다식, 약과, 강정, 수수부꾸미, 진달래 화전, 수수경단, 꽃절편, 꿀물경단 등 맛깔스런 떡과 인테리어로 다소 가라앉은 것 같은 와룡동 거리마저 화사하고 활기차게 했다. 떡 케이크를 찾는 손님이나 선물세트를 찾는 손님도 많았다. 외국인들도 경단이나 송편에 식혜를 주문하여 바깥 테라스에서 즐기고 있었다. 비원 앞에서 종로3가역으로 가는 와룡동 길 도로 양 옆에는 고전의상실, 전통한복, 국악기, 고미술 화랑 등이 아주 오래된, 묵은 동네의 모습처럼 자리잡고 있는데, 새로운 갤러리와 카페 등이 운치 있게 여기저기 새로 들어서고 있어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점차 무르익어 가는 동네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였다. 누동, 운니동, 와룡동 등 동 이름 자체만으로도 낯설어 골목과 도로를 기웃거리고, 빠져들고, 되돌아가기도 하고, 카메라에 담기 위해 결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나절의 방랑자는 마치 영화 [카페 서울]에서 인사동의 전통 떡 카페 모란당을 촬영하기 위해 초라한 골목 끝의 '뜰안'을 찾아냈던 것처럼 헤매다녔다. 와룡동 골목 안에는 누동길 같은 또 다른 국악길이 이어져 있고, 여느 동네처럼 사람 사는 데 필요한 미용실, 문방구, 옷가게 등이 있고, 맛집과 찻집들도 즐비하다. 조선시대와 60년대 서울, 21세기 서울이 함께 엉켜있고 함께 뒹굴고 있는 것 같은, 홍어와 아귀찜, 부침개 냄새 같은 한국의 냄새와 많이 세련되고 도시적인 서울 냄새가 땀에 배인 것 같다. 사람 발길 닿는 곳마다 마치 각양각색의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것 같다. 누군가 한국적인 장소를 찾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곳 와룡동 거리를 추천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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