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비슷한 말로 산보, 올레, 트래킹 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산책이라는 말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초등학교ㆍ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뒷산 성곽 터를 다녔다. 산책길이란 아무 부담 없이 가족ㆍ친구ㆍ연인들처럼, 이해관계 없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대화하고 명상하면서 걷는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서울에는 각 동네마다 산책로와 운동 시설이 잘 되어있기는 한데 연계가 잘 안 돼 시너지 효과를 못 내는 산책길이 있다. 서울 서남부에 위치한 개화 근린공원ㆍ방화근린공원ㆍ꿩고개 근린공원ㆍ궁산 근린공원ㆍ공암 나루 근린공원ㆍ구암 공원은 행주대교에서 가양대교까지 한강변을 이웃하고 있어 경치가 좋고,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사회 간접자본을 서로 연결시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천을 하게 되었다.
먼저 A코스부터 밟아보자. 9호선 개화 역에서 내려 미타사 옆의 짧은 다리를 지나 나무 계단으로 오르면 나지막한 개화산 능선을 만나고 여기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약사사가 나온다. 김포공항에서 행주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지막하게 보이는 산이다. 미타사 옆에 있는 충혼탑은 6.25 전쟁 시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어 오도 가도 못하던 1,100명의 국군이 개화산으로 쫓기다가 포위되어 결국엔 모두 처절하게 죽음을 당한 곳으로, 그동안 매년 미타사에서 위령제를 드리다가 이번 6.25를 맞이하여 ‘6.25 전사자 유령탑’을 높이 세웠다. 왼쪽에는 전사자 1,100명의 명단과, 오른 쪽에는 강서구 출신 생존 용사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약사사에서 방화공원으로 가는 길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방화공원에서 방화대교 아래 테니스장으로 가다 보면 방화공원 근처에 있는 꿩고개 공원이 끝나는 부분 50미터 정도 전방에 왼쪽으로 길이 있는데 10미터 정도 올라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범머리 웅덩이’ 방향으로 내려가면 방화대교 아래 강서구립 테니스장이 나오고 테니스장에서 왼쪽으로 강서 습지공원, 오른쪽으로 서남물재생센터가 있다. 서남물재생센터 우측에 강서 시설공단에서 조성한 1.5㎞ 정도의 산책길이 나온다. 다음은 B코스. 서남물재생센터에서 겸재정선박물관까지는 아쉽게도 아스팔트길이나 사람이 많지 않고 조용하여 산책하기 적합하다. 겸재정선박물관 뒤편에 있는 ‘궁산 땅굴’은 일제 강점기 때 김포 공항과 한강을 감시하는 일본 군부대가 지하 본부나 군수품 창고로 쓰기 위하여 건설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굴착이 중단된 곳으로, 이 동네 토박이인 향교재단 유건 이사장에 따르면 어렸을 때 이 굴 속에서 놀았었는데 무당들이 굿도 하고 굴 입구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었다고 한다.
양천 향교를 지나 궁산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소악루에 다다르면 한강과 북한산, 남산의 수려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궁산 근린공원에서 공암나루 근린공원으로 가는 길. 소악루 옆으로 난 길로 내려가면 잠실운동장 방향으로 가는 올림픽대로가 보이며 바로 옆에 폭 10미터 정도로 가양대교까지 1.5㎞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공암 나루 근린공원 입구가 나온다. 숲 속에는 피톤치드라는 성분이 있어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많은 환자들이 효과를 본다고 한다. 피톤치드는 원래 나무가 자신에게 달라붙은 진딧물이나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 내뿜는 것인데 이것이 인간에게 유익한 성분이 된다고 한다. 걸을 때 뾰족 나온 돌에 용천혈을 딛으면서 걸으면 온 몸에 기가 자극되어 덜 피곤하다는데 스님들이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 갈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녀도 피곤하지 않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구암 공원에서 허준 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나가면 버스가 다니는 길이 나오고 10분 정도 거리에 가양역이 있다. 여기까지의 산책로는 서울 서남부 한강변을 따라 산재되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코스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면서 근처에 가볼 만한 장소가 나올 때마다 자유롭게 선택한다면 초행자라도 길을 잃지 않고 쉽게 산책할 수 있는 코스다.
구태여 서울을 벗어나 멀리 간다거나 힘들게 높은 산을 올라야만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어렵게 서로 약속을 잡지 않고도,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편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산책길을 더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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