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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성元 2011. 3. 14. 12:46

 

 

<집>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제작 연구과정의 일환으로 제작된 <제불찰씨 이야기>(2008), <로망은 없다>(2009)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이 과정의 결과물들은 한국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소중한 성과들이다. 물론 공동연출자의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제불찰씨 이야기>의 네 감독(곽인근, 김일현, 류지나, 이은미), <로망은 없다>의 세 감독(박재옥, 수경, 홍은지) 보다 더 많은 박미선, 박은영, 반주영, 이재호, 이현진, 그렇게 다섯 감독의 합작품이다. 그래서일까, 특히 <집>은 정밀한 미니어처 수준에서 집단창작이 가져다주는 장점으로서의 더욱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씽크대와 냉장고 등 집안을 가득 메운 물품들의 디테일도 놀랍다.

<집>의 무대는 재개발을 앞둔 동네다. 좋은 집은 물론 멋진 남자와 단란하게 사는 게 꿈인 ‘가영’이 바로 이 허름한 ‘희망상가’ 동네로 들어온다. 희망찬 꿈과 별개로 친구 ‘희주’의 옥탑방에 얹혀살게 된 것. 가영은 빨리 이곳을 떠나고픈 생각밖에 없지만 마음씨 좋고 덩치도 좋은 친구는 천하태평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영은 도둑고양이 목에 걸려있던 방울목걸이를 우연히 손에 쥐게 되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상한 존재를 보게 된다. 스스로를 집의 신(神)이라고 소개한 그들은 집집마다 하나씩 터를 잡고 지내고 있었다. 이후 가영은 점차 집신들과 가까워지고 재개발에 맞서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 한 채뿐인 ‘옥탑방’이 아니라 ‘옥상마을’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벽에 집집마다 놓여진 소박한 화분들, 그리고 팔의 문신마저 귀여워 보이는 이웃들의 모습은 무척 정겹다. 이 13가구의 집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서로 다른 색깔과 외양의 집신들이 들어앉아 있다. 오순도순 모여 있는 옥상마을 너머로는 매끈한 직선의 아파트 단지가 쭉쭉 뻗어있다. 이처럼 <집>은 너무나 간결한 제목이 전해주는 느낌처럼 그 공간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다. 귀엽게도 온갖 떡을 좋아하는 신들의 모습에서 전해지는 정감도 무척 아기자기하다.

집신의 존재와 더불어 재개발에 놓인 옥상마을의 모습에서 <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도 한다. <원령공주>(1997)에서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신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도 그렇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 치히로가 빠져든 미지의 세계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토지신과 요괴들 역시 <집>의 집신들을 연상시킨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너구리들이 변신술을 이용해 인간들의 공사를 방해하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도 그렇다. <집>은 그렇게 재개발로 인해 위기에 처한 집신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개발을 추구하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통해 지금 이곳의 사회적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집신의 죽음을 통해 보게 되는 독거노인 문제 등도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터치와 화법은 분명 성인의 눈높이에서 보다 낮춰져 있지만 ‘집의 의미’와 ‘재개발’에 대해 얘기하는 그 교육적 효과는 제법 크고 세련되다. 집단창작의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현실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으로서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성철(씨네21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