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은 장률 감독이 두 번째 장편 <망종>의 다음 영화로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다. <망종>과 <경계>에서 모자 지간으로 설정된 최순희와 창호라는 이름은 <두만강>에서 남매의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이 영화는 여러모로 <망종>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심지어 이것은 <망종>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창호를 중심으로 한 <망종>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망종>에서 베이징 외곽의 스산한 마을 풍경은 연변 자치주와 함경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두만강의 엄혹한 겨울 풍경으로 대치되고, 어린 소년 창호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죽음과 닿아있으며, 순희는 남성에게 유린당하는 참담한 운명 앞에서도 순수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망종>이 순희를 중심에 둔 이야기라면, <두만강>에서 그 역할을 떠 맡는 것은 어린 소년 창호이다. 순희와 창호가 부딪치는 어둠, 종래엔 죽음을 향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절망이 이 두 자매편에 짙게 내려앉은 정서이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간 후 남겨진 할아버지와 순희와 창호 남매. 그들이 사는 연변의 조선족 마을은 직업을 구하지 못해 하릴없이 마을을 배회하는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접경 지역을 순찰하는 공안들의 기계적인 발걸음이 지배하는 곳이다. 부모 없이 남겨진 채 공을 차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얼어붙은 두만강 어귀에 널브러진 탈북자들의 시체는 익숙한 일상이다. 창호는 우연한 기회에 병든 동생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기 위해 강을 건너온 북한 소년 정진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한 탈북자 청년이 누나를 강간해 임신시킨 후, 창호는 변한다. 변한 것은 창호만이 아닌데, 탈북자들로 인해 곤란을 겪게 된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얼어붙는다. <두만강>에는 장률 영화의 특장이 널려 있다. 그의 영화에서 항용되는 불구의 몸을 지닌 사람들, 절망적인 삶에서의 일탈처럼 묘사되는 불륜, 폭력의 다른 양상이라고 할 강간, 무표정한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무심한 노래와 춤, 혹은 그림에 이르는 삶의 위안으로서의 예술 등 영화마다 소소하게 자리바꿈을 하지만 반드시 등장하는 요소들이 여전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단순하지만 흡입력이 있다.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대못을 박아둔 듯 미동하지 않는 롱테이크와 미니멀리즘에 바탕 한 단출한 미장센이 우세하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카메라는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으며, 프레임은 텅 비어 보이지만 느슨하다기 보다 이미지의 장력이 느껴질 만큼 꽉 차 있다. <망종>에서 최순희가 경험하는 짧은 로맨스는 배신으로 끝을 맺지만, <두만강>에서 소년 창호가 경험하는 짧은 우정은 반대로 너무 신실하고 굳건하여 창호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죽은 듯 강 위에 누워있던 창호의 작은 몸과 마지막 장면에서 낙엽처럼 지붕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창호의 가냘픈 몸은 대구를 이룬다. 순희는 <망종>에서처럼 죽음으로부터 창호를 지켜주지 못한다. 순희의 낙태는 그녀의 뱃속에 머무는 또 다른 창호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행위처럼 보인다. 장률 감독은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조선족의 운명 위에 죽음의 기운을 뿌린다. <두만강>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장면은 정진이 창호에게 선물한 장난감 미사일이 눈 내리는 창가에 놓여있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온기는 현실에서는 좀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북에 고향을 둔 치매 할머니가 순희가 그린 그림 속 다리를 건너는 에필로그의 판타지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
장병원(영화평론가,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프로그래머) |
[출처 : 웹진 넥스트플러스 no.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