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양기승 기자]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알고 이해하며, 영원한 나의 응원군이자 말그대로 '내 편'이 될 수 있는 '가족'.
때로는 함께 웃고, 또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하며, 어떨 때는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기도 하는 '가족'.
먹고 살기 바쁜 이 세상, 이 사회에서 점차 '가족'은 어떤 의미로 변해가고 있을까? 평소에 가족과 얼마나 대화를 하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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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넌지시 건네는 영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도 전에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바로 민규동 감독의 새 영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이다.
더 많은 시간, 함께 할 걸 그랬습니다
무뚝뚝한 의사 남편(김갑수), 치매에 걸려 사고만 치는 시어머니(김지영), 사랑스럽지만 늘 바쁜 딸(박하선), 대학은 가지 못하고 여자친구만 아는 아들(류덕환), 도박에 빠져 돈만 빌려가는 동생(유준상) 그리고 그런 못난 동생과 사는 그의 처(서영희).
인희(배종옥)는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밝게 산다. 그러던 중 그녀는 소변보는 일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남편 정철(김갑수)은 별 것 아니라며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라고 무뚝뚝하게 말한다.
인희는 남편도 볼 겸해서 남편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된다. 검사 결과, 정철은 그녀에게 심상치 않은 병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는 그 사실을 비밀로 한 채 그녀의 삶을 되돌아 보며 그녀에게 미안해한다. 그리고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 간다.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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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것이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충분히 줄거리가 예측 가능하며 변주를 시도하지도, 시도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기본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이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다. 분명히 많이 봐왔고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식상하다고 느낄 틈이 없다. 진부한 이야기를 보게 되지만 선뜻 진부하다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평범하고, 많이 보던 이야기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영화가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특별한 인물도, 튀는 인물도 없다. 단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 딸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은 마치 관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듯한 인상을 준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 따라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할 수 있다. 평범함에서 오는 공감. 영화는 이것을 통해 관객들이 진부한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웃음과 눈물, 그 자체가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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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캐릭터가 웃음과 눈물 두 가지를 지니고 있지만 주인공 인희 역의 배종옥과 남편 정철 역의 김갑수가 주로 눈물을 준다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역의 김지영과 아들 역의 류덕환, 그리고 동생 부부인 유준상, 서영희는 웃음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웃음을 통해 '가족'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눈물을 통해 '가족'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러운 것은 없다. 영화는 억지스럽게 웃기지도, 울리지도 않는다.
우리 주변의 어느 집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채워진 가족 이야기는 공감하기 쉬운 웃음과 눈물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고,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관객 스스로 대입하기 쉬운 캐릭터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범함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캐릭터들에게는 하나 하나 모두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들도 특별하지 않다. 성격, 행동, 말투 또한 평범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스스로를 캐릭터 하나 하나에 대입하기가 쉽다.
딸은 딸의 입장에, 아들은 아들의 입장에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 영화 속 딸과 아들은 어느 집에서 있을 법한 전형적인 딸과 아들을 보여준다. 극 중 딸이 자신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대사 하나도 누구나 한 번쯤 뱉어본 말이었을 것이다.
한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살고 있는 여자들은 인희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늘 가족을 챙기고, 그 후에 자신은 항상 뒤로 밀려나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없는 그런 반복적인 삶.
전체에서는 무리겠지만 관객들이 일부분에 한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의 세밀한 부분들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그 공감은 곧 감동으로 이어지고, '가족'에 대해 생각할 많은 것들을 안겨준다.
영화를 보며, 영화가 끝난 뒤 '나의 가족'에 대해 되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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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그를 통해 웃음과 눈물을 주며 감정적으로 감동을 주었다고 해서 좋은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결론을 내리게 해준다.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말에 오랜만에 극장에서 많은 생각과 의미를 나누며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되겠다.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휴지나 손수건은 필수품이라고 하겠다. 러닝타임은 125분, 4월 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