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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마더 앤 차일드

MOON성元 2011. 4. 29. 15:36

엄마 카렌의 이야기
카렌은 무척이나 자기방어적이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사는, 그래서 누군가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친절한 행동 하나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가정부와 그 딸도 못마땅하고 자꾸만 친근함을 보이는 동료의 태도도 반갑지 않다. 카렌의 그런 행동의 원인은 딸이다. 14살 때 출산하자마자 입양시켜버린, 이름도 모르는, 어떤 얼굴일지 알지 못하는, 이제 37살이 되었을, 어딘가에 살고 있을, 딸. 카렌은 평생을 그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늘도 편지를 쓰고 있다. 지금 내리는 비를 너도 보고 있을지 궁금하고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고 지금 결혼은 했는지 궁금하고... 하지만 카렌의 이런 마음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어 세월과 함께 쌓여만 간다.
딸 엘리자베스의 이야기
엘리자베스는 무척이나 공격적이고 저돌적이다. 마음의 문을 절대 열지 않는, 그래서 누군가와의 관계들도 피상적이고 표면적이다. 유능한 변호사임에도 직장을 자주 옮기고 가볍게 즐기는 관계로 남자들을 만난다. 엘리자베스의 그런 행동의 원인은 엄마다. 어린 엄마가 자신을 출생하자마자 입양시켰다는 상처는 쉽사리 지울 수 없었고 그 사실은 그녀가 일찌감치 독립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낳은 엄마, 이곳 LA에 살고 있는 걸 아는데, 날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데, 어떤 모습을 하고 있기에, 어떤 마음이기에 자기 몸으로 낳을 딸을 단 한 번 찾지도 않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깊고 큰 상처를 부여잡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깊은 트라우마에 갇혀 엘리자베스는 오늘도 마음을 다지며 이를 악물고 있다.
딸 카렌의 이야기
엄마와 집을 돌볼 가정부를 구했는데 왠지 엄마는 자신보다 그 가정부와 더 깊은 얘기를 나눈다. 더구나 가정부의 딸에게 남긴 엄마의 목걸이는 할머니 거였는데! 엄마가 세상을 뜨고 나서 가정부는 엄마가 카렌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렸다고 전 한다. 아기를 낳자마자 입양 보낸 것에 대한... 왜, 엄마는 그런 얘길 나에겐 해주지 않았던 거지. 왜 엄마는 당신의 죄책감을 혼자 감당하고 세상을 떠버린 거지. 난,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데, 난, 엄마를 용서할 수 있는... 평생을 꼭꼭 다져온 마음이 그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마음이 향하는 대로 딸을 찾고자 한다. 그러면서 카렌은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엄마 엘리자베스의 이야기
그녀, 생각지 못했던 임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을 고립시키며 생각을 거듭한 뒤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4살의 엄마와 똑같은 마음이 되어 14살의 엄마와 똑같은 상황이 되어 엄마의 존재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고 마음이 향하는 대로 엄마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딸을 세상에 남기고 그만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녀의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는 귀한 실마리가 되어준다.
누군가의 엄마이지 딸인 세상의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세상 모든 관계들의 기본이 되는 관계. 영화 <마더 앤 차일드>는 몇 명의 엄마들과 몇 명의 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관계들을 통해 우리 내면에 깊게 드리워지는 상처들과 흔적들과 회복들과 미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후에, 누군가의 마음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가 편안해졌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영화는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것이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지 않는 한 닫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로에게 엄마가 되는 것도, 딸이 되는 것도 노력이 따라야 함을 전해준다. 평생을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딸과 (더불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마까지도) 관계를 맺지 못하던 카렌과 평생을 버림받은 상처로 분노하며 스스로 엄마와 (더불어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던 엘리자베스, 그리고 불임으로 아기를 갖지 못하고 입양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루시가 아기를 맞아 스스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마음 한구석이 크게 울려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엄마로서의 카렌은 아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자책하며 살았지만 딸로서의 카렌은 자신의 엄마 또한 그 일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딸로서의 엘리자베스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평생을 치를 떨며 살았지만 엄마로서의 엘리자베스는 드디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또 다른 딸이자 엄마가 되는 루시가 또 다른 화자가 되어 딸이자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딸로서의 루시는 엄마의 말들이 잔소리처럼 들린다. 아기를 입양하는 문제도 그냥 놓아두면 내가 알아서 할 텐데. 하지만 루시의 엄마는 이미 알고 있다. 아기를 입양하는 것이 루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드디어 아기를 입양해 엄마가 된 루시는 엄마다 ‘되어간다.’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눈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다. 그런 루시를 보며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카렌과 엘리자베스, 카렌의 엄마, 루시와 루시의 엄마 그리고 루시가 입양하는 엘리자베스의 아기... 딸이자 엄마인 관계들로 맺어진 이 관계들은 결국 우리들의 관계의 근원이 어디에 가 닿아있는지 알려주고 있고 우리는 결국 섬이지만 그 섬들은 또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알려주고 있다.
글. 신지혜 (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출처 : next plus no.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