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하는 짓이 계집애 같은 아이가 있었다. 목소리부터 행동거지까지 하나하나가 영락없는 여자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놀리기 일쑤였고 더러는 ‘호모새끼’라고 그 아이를 불렀다. 70년대 고등학생이 그랬듯이 나 역시 호모가 뭔지 몰랐다. 세상으로 나오고서야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친구를 도와준 적 한 번 없었다.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다. 서로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했을 뿐 성정체성과 관련한 혹은 취향의 다름에 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내가 호모포비아(homophobia)는 아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영화평론을 시작하면서 동성애에 관해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가 훌륭한 선생님이 된 셈이다.
동성애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성애자를 향한 폭력적 언사와 시선은 그것이 차별이 아닌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이성애만이 정상이고 상식이라 믿는 비뚤어진 생각. 나와 다른 것은 틀렸다고 쉽사리 간주해버리고 배척하는 것, ‘차이가 차별의 준거’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주류집단 스스로가 자신들이 타자화 시킨 대상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논리의 정당화를 지속시켜왔다는 데 있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순환 고리 기저에 ‘차별과 편견의 역사’가 숨 쉬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세상의 다양한 모습과 삶의 양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 중에서도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매력은 형언할 길이 없다. 뚝심 있게 바닥까지 내려가 길어 올린 둔중한 메시지로 뒤통수를 내리치는 가하면, 사랑스런 얼굴로 따뜻한 삶의 풍경을 속살거리기도 하는 것. 다큐멘터리만의 매력이다. 반면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이거나 앞뒤 안 가리고 감정을 헤집고 들어오려고 할 때, 거부반응이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촬영과 편집기술의 발전과 맞물린 ‘설득의 미학을 실천한 시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은 2010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이면서도 경쟁작 이상의 인기와 매진사례를 기록한 영화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한 ‘2010년 독립영화’에 선정된 것만 보아도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작품인지 짐작하게 한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는,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게이인 그들의 삶과 성정체성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조용한 어조로 풀어간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퀴어 영화감독 소준문의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사회활동가 정욜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종로의 기적>은 게이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 높여 고함치지도 억지 눈물을 짜내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기쁨과 애환을 여과 없이 보여줄 뿐이다. 작위적이지 않은 구성임에도, 영화가 종반으로 치달을 때면 관객의 풀어진 마음과 촉촉해진 눈시울을 통해 감독의 진심을 증명해줄 것이라 믿는다.
관객의 정서적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영화,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의 마음에 작은 변화를 불러올 기적 같은 순간을 목도하게 될 <종로의 기적>, 요컨대 교조적이지 않아 개운하고, 신파에의 유혹을 초월한 의젓함이 당당하고 유쾌하다. 사적으론 소준문의 <올드 랭 사인>과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 될 퀴어 영화가 아닐까 싶다.
흥행을 떠나, 나는 이 영화가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교정하거나 그들의 삶에 즉각적으로 도움 되진 않을지라도, 분명 큰 울림을 동반할 그 무엇이 영화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을 통해 작은 변화의 첫 발을 내디딜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그들이 바라마지 않던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의 진일보. <종로의 기적>이 한국사회의 차별적 프레임을 통과하고 관객과 당당하게 마주하는 그 순간, 기적 같은 날들이여, 부디 우리 앞에 오라!
- 2011.06.02
백건영(영화평론가)
[출처 : 네오이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