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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똘

MOON성元 2011. 8. 26. 14:07

영화에 대한 의미와 기대를 거부한다!
최근 인터넷 유행어 가운데 ‘병맛’이라는 단어가 있다. ‘병신 같은 맛’을 축약시킨 이 단어는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어이없음을 조롱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병맛’은 재미 삼아 유통되는 유행어를 넘어서 하나의 장르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표적인 것이 웹툰 <이말년씨리즈>인데, 정제되지 않은 작화 속에 각종 신화와 종교적 상징을 무차별적으로 끌어와 산만하고도 거침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병맛 만화’의 얼굴이 됐다. 이러한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해 해석하자면 2008년 음악계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축축한 비닐 장판”이 깔린 방에서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도 “별 일 없이 산다”고 얘기하는 청년들은 자신의 구질구질한 인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남들이 보기엔 한없이 ‘병신’ 같지만 그래도 나는 내 멋대로 산다는 그들의 특별한 자존감은 공감과 웃음, 더 나아가 풍자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어쩌면 <뽕똘>도 이러한 ‘병맛’ 문화의 일부일지 모르겠다. 오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뽕똘>은 ‘탐라 오디세이 무비’를 표방하고 있지만 제주라는 배경보다 자신들만의 신념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한 엽기 캐릭터들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어느 허름한 폐공장에서 영화 <전설의 물고기>의 오디션이 펼쳐진다. 참여자는 서울서 잠깐 쉬러 왔다가 우연히 오디션에 임하게 된 성필(김민혁)과 감독이지만 배우도 꿈꾸는 뽕똘(이경준), 그리고 사사건건 뽕똘과 대립하는 홍일점 춘자(조은)이다. 시나리오도 없고 제작비도 한 푼 없는 상황에서 어찌어찌 촬영을 시작하게 된 이들은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세상을 구할 전설의 물고기 돗돔과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산방덕이 이야기를 초저예산으로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애초부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시작된 촬영이 순탄할 리 없다. 영화에 회의를 품는 배우, 돈 없다는 제작자 겸 음악감독인 동네삼촌과의 갈등은 깊어지고 이런 와중에서도 뽕똘은 촬영을 강행한다.
초지일관 제멋으로 사는 그들이지만 단 한 번의 균열이 일어난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민망한 촬영을 마친 후, 방파제에서 돌돔인지 돗돔인지 모를 회를 먹는 장면에서 춘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전설의 물고기라면서 돗돔을 왜 먹느냐.”며 울부짖는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객관화시킨 이의 회의와 자괴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은 그뿐, 영화는 다시 그들만의 판타지로 되돌아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질구질하고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도 오디션과 촬영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행진에 공감이나 이해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구워지는 오징어 연기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고 가는 오디션 장면부터 난데없이 끼어드는 산방덕이 전설, 아스팔트 위에서 진행되는 돗돔 잡는 어부의 사투까지, 좌충우돌 영화 제작기를 지켜보면서도 공감은커녕 하다못해 웃음의 타이밍을 잡기조차 애매해진다.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식 구성을 안고 있지만 두 영화 중 어느 하나 뚜렷한 맺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두서없이 나열한 뒤, “너한텐 영화가 뭐냐?”라는 질문에 “자파리(여러 가지 물건들을 아주 심하게 어지럽히면서 노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쓸모 없는 짓, 쓸데없는 장난을 뜻함)”라는 대답을 건네며 어영부영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모든 의미와 기대를 거부하는 영화인 셈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이런 특징을 두고 “매력적이고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평가하며 무비꼴라쥬상을 안겼다.
송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