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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不惑의 배우 유준상
MOON성元
2009. 6. 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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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준상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심상국 감독의 영화 '로니를 찾아서' 주연배우 유준상. 2009.5.31 maum@yna.co.kr |
"집착을 버리고 이제 다시 시작이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유준상(40)은 스스로 색깔 없는 배우라고 말한다. 나이 마흔을 넘으면서 욕심을 버리는 지혜도 배웠다고 한다.
단순하게 사는 것. 그가 목표로 하는 삶의 자세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위선적 지식인 고 국장 역할에서, 내달 4일 개봉하는 '로니를 찾아서'(신상국 감독)의 태권도 사범 인호까지. 그의 연기에는 단순함과 무색의 느낌이 묻어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주류 배우가 왜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느냐고 묻자 씩 웃으며 말문을 연다.
"홍상수 감독님과는 애초부터 작업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로니를 찾아서'는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찾고 싶은 무언가가 시나리오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를 '로니를 찾아서'로 이끈 건 일기장이었다.
"몇 년 전부터 쓰던 일기장이 없어졌어요. 일년간 찾았는데 못 찾았죠. 어느 순간 그게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련의 기억들에 내가 집착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찾을까 버릴까.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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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고민에 허덕일 때, '로니를 찾아서'를 만나게 됐다. 자기를 모욕한 로니라는 인물을 찾아다니는 인호의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을 매개로 로니의 고향 방글라데시까지 떠나는 인호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많은 걸 잃어버립니다. 그게 연필이나 지우개가 될 수도 있고, 꿈이 될 수도 있겠죠. 결국 집착을 버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새로운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유준상은 '로니를 찾아서'를 통해 자기성찰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특히 이전까지 연기 경력이 전혀 없었던 상대 배우 뚜힌과 나눈 대화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뚜힌은 한국에 온 지 한 8년쯤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7년간 모은 1천500만원 가량을 사기당했다고 해요. 그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이 단 한 순간에 날아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역경에 대처하는 이 친구의 자세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 담담하게 '또 벌면 되죠'라고 말하더라고요. 돈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안 받더라고요. 돈과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연기는 초보였지만 그 친구와 영화 작업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다문화 사회를 이야기의 한 축으로 하는 '로니를 찾아서'에 출연한 배우 유준상이 바라보는 올바른 다문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처럼 큰 나라에 가면 괜히 주눅이 들잖아요. 그때 거기 현지인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괜히 고맙더라고요. 우리도 그냥 진심어린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 들어온 외국인에게 손 내밀면 될 것 같아요. 거창한 친절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내밀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가 다음에 준비하는 영화는 민병훈 감독의 '천국의 향기'다. 아직 촬영시작조차 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택시비를 냈느냐 안 냈느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분신까지 가는 극단적인 인물을 연기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 인물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증명받고 싶어하고 내가 맞다는 데 집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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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최근 그가 선택하는 인물의 공통 키워드는 '집착'이다. 고 국장은 권위에 집착하고, 인호도 복수에 집착한다. 그가 이처럼 무언가에 집착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일상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작년 말부터 뮤지컬 연습 끝나고 맥주도 마시게 되고, 공연하면서 올해는 담배도 피웁니다. 조금씩 제가 규율한 철칙들을 깨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고 질문하자 가수 김광석의 노래 한 구절인 "이제 다시 시작이다"를 끄집어낸다.
"30대는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리 거울을 봐도 배우의 얼굴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수년을 고민했는데 30대 후반부터 서서히 얼굴이 바뀌더라고요. 마흔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을 느낍니다. 이제 다시 시작인 거죠."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