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여 날자,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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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권위 제작 ‘시선 1318’
<시선 1318>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여섯번째 영화다. ‘국가’와 ‘인권’이라는 거창한 명사와 7~8천원 내고 극장을 찾는 관객의 기대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심연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심연에 다리를 놓아준 이들은 유명세와 실력을 두루 갖춘 감독들이었다. 2003년 개봉한 인권위의 첫 작품 <여섯개의 시선>부터 2006년 <다섯개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박찬욱, 박광수, 임순례, 박진표, 류승완, 정지우 등 쟁쟁한 이름들이 거쳐갔다. 청소년 인권을 집중 조명한 <시선 1318>에는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김태용·윤성호 감독의 작품이 가장 눈에 띈다.
김태용 감독 ‘달리는 차은’
다문화 가정 소녀 조명한 수작 윤성호 감독 ‘청소년 드라마…’
예비 88만원세대 향한 몽타주
■ 김태용 감독 <달리는 차은> 30분짜리 영화로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캐릭터 구축하고, 갈등 원인 제시하고 증폭시킨 다음, 절정을 지나 해소되는 과정을 30분 만에, 그것도 감동적으로 펼쳐낼 수 있다면, 탁월한 감독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달리는 차은>의 김태용 감독은 그걸 해낸다. 장편 <가족의 탄생>을 통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의 아름다운 동거라는 판타지를 완성한 그는 <달리는 차은>에서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이 겪는 방황과 좌절, 꿈과 사랑의 대위법을 수채화처럼 맑은 터치로 명징하게 그려낸다. 짧은 영화지만 장편 못지않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인권 영화, 예술 영화, 대중 영화, 어느 쪽으로 분류해도 손색없는 수작이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는 화장기 없이 예쁜 소녀 같다. 김 감독은 <달리는 차은>의 주인공으로 꼭 자신의 영화 같은 사람을 골랐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육상 선수인 차은 역에 맞는 배우를 구하려 전국을 떠돌다가, 그는 실제 육상 선수 전수영(14·정읍여중 2학년)양을 찾아냈다. 필리핀에서 온 새엄마 역에는 실제 필리핀 이주 여성을, 차은 동생 역의 동민은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이나겸(10)군을 캐스팅했다. 보름가량의 촬영 기간에 김 감독은 이 비전문 배우들에게서 전문배우를 능가하는 연기를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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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호 감독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달리는 차은>이 정극이라면,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소극(笑劇)에 가깝다. 독립영화계의 주옥같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장편 <은하해방전선>(2007)으로 우디 앨런적인 재치와 유머를 선사했던 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전매특허인 재기발랄함을 과시한다. 윤 감독은 청소년의 언어로 청소년의 오늘을 전한다. 청소년들의 4차원적인 대화 속에는 우리 사회의 슬픈 본질이 담겨 있다. 영화에서 선영이는 디자인을 전공하겠다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디자인 하려면 국민대 정도 나와야 하는데 힘들지 않아? 국민대 그것도 들어가기도 되게 힘들고, 나와도 되게 힘들어. 유학도 가야 되고. 돈 진짜 많이 들어.”
윤 감독은 “지금 청소년의 문제는 현재를 유예하며, 합리성을 도외시하는, 검증되지 않은 경제의 신화만 좇는, 대한민국 기성세대의 문제”라며 “이 단편은 그 어른들을 존경해본 적 없으면서도 다른 대안 없이 닮아가는 청소년들, 그런 예비 88만원 세대들에 대한 날것의 몽타주”라고 말했다. 씨네큐브 광화문, 아트하우스 모모, 씨지브이 무비꼴라주에서 11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 사진 백두대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