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애프터 스토리] '고종 증손녀' 이홍, '불꽃처럼 나비처럼' 출연
그녀는 가족에 대한 언급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했다. 대신 출연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가족을 떠나서 그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이홍(34). 고종과 명성황후의 증손녀이자 조선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왕족이다. 이홍의 할아버지는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화군(의친왕), 이홍의 아버지는 의친왕의 열한번째 아들인 이석씨다. 이홍은 명성황후의 삶을 그린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출연해 다음달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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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라는 건 참 우연히 찾아온다.
"친한 후배 배우인 손화령이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본인은 떨어지고 대신 저를 추천해줬어요. 이런 배우가 있는데 한번 오디션을 볼 수 있겠냐고. 제 얼굴이 좀 고전적으로 생긴 덕분인지 제작사 쪽에서도 관심을 보였고요."
제작사 관계자들은 이홍의 집안 내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출연 의지가 대단했던 배우 정도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집안 내력은 철저히 배제하고 싶었어요.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었으니까요."
▶할머니의 죽음
극중에선 명성황후의 옆을 떠나지 않고 보좌하는 상궁 역을 맡았다. 명성황후 역은 수애가, 황후의 호위무사 무명 역은 조승우가 열연했다.
"실제로 무명처럼 명성황후를 지키는 호위무사 장군이 있었대요. 증조할머니를 시해하려는 세력들이 많았으니까. 물론 명성황후와 무명의 로맨스는 어디까지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거겠지만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한국 근대사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영화는 1895년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기까지 명성황후의 삶을 되짚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보면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불태우는 장면이 있어요. 황후를 눕히고 그 옆에 무명을 놓고 저는 그 옆에 놓여요. 장작불에 기름을 뿌리고 함께 불태우는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누워있는 것처럼 마음이 시리고 아팠죠.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우셨을지…."
▶나의 가족 나의 꿈
"할아버지가 어릴 때 궁에서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를 하면 주위에서 '조심하옵소서, 애기씨마마' 이랬대요. 근데 이번 영화에도 고종 할아버지가 궁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말로만 듣던 장면을 실제 영화로 찍으니까 저도 감회가 남달랐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와 장면, 소품들은 모두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그릇이나 천처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엄격하게 고증을 거쳤어요. 심지어 3억원에 이르는 도자기도 영화 속에 나오는데, 실제로 왕실에서 쓰던 물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의 피 속에 흐르는 황실의 역사를 처음 알았다.
"주변 어른들이 증조할머니에 대해 말씀 하시는 건 거의 못 보고 자랐어요. 아마 우리에게 너무 아픈 기억이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왕족이라는 수식어가 자신의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그런 부담감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 스스로 그냥 평범하게 사니까.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대학 졸업후에 간간히 CF를 찍어오긴 했지만 본격적인 연기활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 권영한 기자 champa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