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11.4~11.26)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가 돌아왔다! 3회를 맞는 올해의 영화축제는 여름부터 기다려 왔을 관객들을 위해 신작과 거장들의 작품을 골고루 즐길 수 있는 풍성한 공동 프로그램과 다양한 부대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11월 4일 개막작인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의 상영과 함께 시작될 3주간의 영화축제를 꼼꼼히 살펴보자.
예술영화전용관에서가 아니면 만나보기 힘든 거장 감독들의 특별전과 회고전이 세 개나 준비되어 있다. 1950년대에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과 함께 일본영화를 세계 영화계에 알린 미조구치 겐지 감독은 장 뤽 고다르의 말처럼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대한 영화감독들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1923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미조구치는 신파 멜로드라마를 비롯해 형사 영화, 전쟁 영화, 코미디, 공포 영화 등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했으며 파멸의 위기에 처한 여인들의 험난한 인생역정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롱테이크 그리고 정교한 미장센으로 특징지어 지는 ‘미조구치 스타일’로 꾸준히 담아 왔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우게츠 이야기>(1953)를 비롯해 한 여인이 게이샤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게이샤>(1953), 인신매매가 횡행하던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그리고 인신매매 등의 인권 문제를 그리고 있는 <산쇼 다유>(1954) 그리고 유작인 <적선지대>(1956)까지 대표작 8편을 상영하는 이번 특별전은 서울의 필름포럼과 롯데시네마 부평점에서 열린다. 미조구치의 세계와 스타일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나 이마무라 쇼헤이 같은 감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줌으로써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도화선이 됐을 뿐만 아니라, 미이케 다카시나 츠카모토 신야 등 파격적인 소재를 충격적인 영상에 담고 있는 현재의 일본영화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회고전도 눈여겨 볼만하다. 1961년 작인 <아내는 고백한다>와 <훔친 욕정>(1962), <섹스 체크>(1968)까지 마스무라 야스조의 대표작 10편을 광주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누벨 이마주(Nouvelle Image)’란 이름으로 ‘누벨 바그’ 이후 전 세계에 프랑스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일군의 감독들이 있었다. 장 자크 베넥스, 에릭 로상, 뤽 베송 그리고 레오 카락스가 그들이다. 화려한 조명과 새로운 이미지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누벨 이마주의 대표적 감독인 레오 카락스 감독이 대표작을 상영하는 특별전과 함께 10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24살 때 흑백으로 만든 강렬한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와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두 편의 영화 <나쁜 피>(1987), <퐁네프의 연인들>(1991) 이렇게 세 편이 특별전에서 상영되고, 레오 카락스 특별전을 개최하는 서울의 씨네시티, 아트하우스 모모에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며 홍대의 시네마 상상마당에선 레오 카락스 감독이 직접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1999년의 <폴라 X> 이후 가졌던 긴 공백기를 깨고 2008년 봉준호, 미셸 공드리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로 돌아 온 레오 카락스 감독과 1990년대 초 한국의 시네필들이 열광했던 대표작들을 극장에서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개막작인 필립 클로델 감독의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제작되어 2008년과 2009년 칸, 베를린, 베니스 등의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영화들과 참신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다양한 일본영화 신작들이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를 통해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한국 관객에겐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여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프랑스 영화인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에선 불어로 연기했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15년간의 긴 수형생활을 마치고 여동생 집에 기거하면서 새로운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섬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로, 토마스는 이 작품으로 2009 런던비평가협회상과 유러피언 필름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신비로운 여인으로 출연했던 또 한 명의 영국 여배우 사만다 모튼을 이번 영화축제에서는 감독으로 만난다. 그녀의 첫 연출작인 <언러브드(Unloved)>(2009)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별거 중인 부모님으로 인해 정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소녀 루시가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어린이 보호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채널4 방송국의 ‘영국의 잊혀진 아이들’이라는 TV 시리즈와 함께 영국 전역에 방영되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8년 선댄스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미국 영화 <더 비지터(The Visitor)>(2008)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 중인 토마스 매카시의 작품으로, 피아니스트이던 부인의 죽음 이후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던 중년의 경제학 교수가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불법이민자이자 음악가인 두 젊은이를 만나면서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을 뿐 아니라 불법이민자에 대한 미국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을 연기한 리처드 젠킨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젠킨스는 200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찌질한 청춘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나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뿌리 깊은 갈등을 지닌 가족이야기, 엉뚱한 상상력과 재치로 똘똘 뭉친 코미디에 강세를 보이는 일본 인디영화들.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한국에 소개되어온 일본의 작은 영화들은 어느새 한국 예술영화전용관들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인디영화 신작들은 이번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에서도 빠짐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사노 타다노부 주연의 <서바이브 스타일 5+>와 오다기리 죠의 <타미오의 행복> 외에도, 헌책방을 중심으로 모인 청춘 남녀의 코믹한 사랑 얘기를 다룬 <괜찮아, 정말 괜찮아>, 키가 너무 커서 고민인 여자와 너무 작은 키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남자가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시작해나가는 <러브콤>까지 총 7편의 일본영화 신작을 서울의 스폰지하우스, 인천의 영화공간 주안, 대구의 동성아트홀에서 볼 수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을 자주 찾는 관객들이라면 개별 극장들이 지닌 프로그램상의 특성과 개성을 이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기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인 ‘다큐 인 나다’로 유명한 대학로에 위치한 하이퍼텍 나다가 2009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를 위해 선택한 기획전 주제 역시 음악영화들이다. 인천의 모텔 촌 한 가운데 생긴 라이브 클럽 ‘루비살롱’을 찾아 온 두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쥬스’를 소재로 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09)과, 얼마 전 끝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해운대 해변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쳐 영화제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던 ‘좋아서 만든 밴드’가 음반을 내기까지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다룬 <좋아서 만든 영화>(2009) 등 극영화, 다큐멘터리를 포함 총 8편의 음악영화들을 상영한다.
2009년 처음으로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에 참여한 야우리시네마는 천안에서 가장 큰 극장이자 가장 많은 관객들이 찾는 극장이다. 극장주가 운영하는 ‘아라리오 갤러리’가 야우리시네마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야우리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에겐 미술 전시회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러한 공간상의 장점을 살려 야우리시네마는 화가나 미술작품, 사진작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모은 ‘영화, 미술관에 가다’라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클림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세라핀>, <고야의 유령> 등 화가가 주인공인 영화들과 <팩토리 걸>,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 <허니와 클로버>, <요시모토 나라와의 여행> 등 총 9편의 상영작들이 그림과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들의 가을 나들이를 책임질 예정이다.
역시 올 해 처음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을 시작한 경북 안동에선 ‘늦게 와서 미안’이란 제목으로 세 가지 기획전을 마련했다. 일본영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안동에선 개봉 기회를 갖지 못했던 <걸어도 걸어도>, <피시 스토리>, <해피 플라이트>와 우에노 주리의 신작인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과 <러브콤>, <괜찮아, 정말 괜찮아>를 ‘일본 영화 미니특별전’을 통해 소개하고, 왕가위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아비정전>, <중경삼림>, <타락천사>는 ‘왕가위 감독 특별전’에서 상영하며, 2009년 독립영화계의 화제작 <똥파리>를 ‘천원상영회’를 통해 안동에선 처음으로 선보인다. 또 이번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의 공동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레오 카락스 특별전도 함께 열린다. 조금은 늦게 안동을 찾는 영화들이지만 관객들이 느낄 감동은 어느 신작들 못지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르떼’라는 자체 예술영화전용관 브랜드를 가진 롯데시네마는 일산 라페스타점과 부산의 센텀시티점에서 ‘Music & Film'이라는 제목으로 음악영화들을 소개한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던 스페인 영화 <노벰버>, 영국영화인 <스무 살의 침대>(2009)와 각종 음악 콘서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ATP>(2009), 그리고 1980년대 영국에서 활동했던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언 커티스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보여주는 <컨트롤>까지 7편의 음악영화로 일산과 부산의 롯데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예정이다.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를 찾는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단 돈 천원으로 신작 영화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천원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올 해 천원상영회를 위해 준비된 작품은 모두 독일 영화이다. 1929년 토마스 만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영화화 한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 외에 다이엔 크루거가 주연한 <메리 크리스마스>, 2009년 신작인 <환상통> 등의 영화들을 천원에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레오 카락스 특별전을 진행하는 시네마 상상마당, 씨네시티 극장에선 영화축제 기간에 맞춰 방한하는 레오 카락스 감독을 씨네토크 시간을 통해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개별 기획전에서 상영되는 작품의 감독 및 배우 그리고 평론가들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시네토크가 20여 회나 열린다고 한다.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되는 늦가을의 향취를 거장들의 고전 및 신작 영화를 다양한 부대행사들과 함께 극장에서 만끽할 수 있는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는 11월 4일부터 3주간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들에서 열리며, 극장별 상영시간표 및 이벤트 정보는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홈페이지인 www.artpluscn.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선희(그냥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