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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이재용 감독 "사실과 허구, 구분 불가"

MOON성元 2009. 12. 10. 11:35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아시아경제 고경석 기자]이재용 감독은 충무로에서 독특한 존재다.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처럼 다분히 클래식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다세포소녀'처럼 프리재즈 같은 영화를 내놓기도 한다.

10일 개봉을 앞둔 '여배우들'은 '다세포소녀'에 비하면 정통 재즈에 가까운 영화다. 굳이 설명하자면 프랑스 영화 '8명의 여인들'에 다큐멘터리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를 뒤섞은 것과 유사하다.

허구와 실재를 뒤섞어놓은 시도는 실험적이지만 극의 전개 방식은 지극히 전통적이다. 다각도에서 인물들을 포착하는 여러 대의 카메라와 들고찍기의 자유로움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영화 '여배우들' 개봉을 앞두고 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재용 감독은 부쩍 늘어난 흰머리와는 달리 여전히 소년다운 순수함과 청년의 열정이 꿈틀거리는 예술가의 인상을 풍겼다.

"윤여정·고현정씨와 사석에서 이야기하다가 나온 것이었는데 평소 하고 싶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여배우를 위한 영화를 찍고 싶었거든요. '여배우만 나오는 영화를 하면 모일까요?'라고 물었더니 '못할 게 뭐 있냐, 재밌겠다'고 해주셔서 시작하게 됐죠. 두 분 외에 이미숙씨도 할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영화 '여배우들'의 한 장면

캐스팅 과정은 생각만큼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여배우들이 모인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배우도 있었고, 시나리오 없이 연기하는 것 때문에 거부한 배우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거론된 전도연과 송혜교는 각각 육아와 중국 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어떤 배우는 4일 전에 하차를 선언해 애초 계획과 달리 여섯 명으로 촬영을 진행하게 했다.

'여배우들' 촬영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6월의 스튜디오에 12월의 상황을 연출해야 했다. 배우들의 어려움은 더했다. 상황만 주어지고 시나리오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직접 대사를 만들어 연기해야 했다. 이 감독은 "다른 영화는 NG가 나면 다시 찍으면 되는데 이 작품은 흘러가면 그냥 끝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즐기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으며 연기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여배우들'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는 '입담 삼총사'인 윤여정·이미숙·고현정이다. 이 감독이 이 영화를 재즈에 비유할 때 '즉흥 연주'라는 점에서 가장 어울리는 배우들이기도 하다. 최지우가 송혜교를 부러워하며 '일본시장' '중국시장'이란 단어를 쓰자 윤여정은 "난 재래시장이나 지킬래"라고 위트 넘치는 대사를 던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허구와 실재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이재용 감독은 "6월에 12월 배경으로 찍는다거나 패션화보를 위해 모인다는 설정, 고현정과 최지우가 말다툼을 하는 설정 등은 어느 정도 미리 정해놓은 틀이지만 각자 배우들이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통해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실재와 허구의 구분을 정확히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배우들'은 편집과정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이재용 감독은 기억한다. 40시간짜리를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는 "나를 믿고 참여해준 분들에게 부끄럽고 망신당할지도 모른다고, 심지어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건 이런 영화는 없었다는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이재용 감독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전적인 영화와 새로운 영화를 두루 좋아하는 취향답게 "나 스스로도 안 해본 것을 해보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실향민을 소재로 한 '귀향'과 사극 다큐멘터리,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일제 치하를 그린 시대극 등이 현재 이재용 감독의 서랍 속에서 대기 중이다. '여배우들'은 이재용 감독의 영화세계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