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과 삼청동 사잇길 거리의 재발견 ⑦ … 풍문여고~정독도서관까지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종로 인사동을 처음 찾았던 것이 꼭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엄마 손을 잡고 찾았던 인사동은 전통 그림을 걸어둔 화랑으로 가득했고 길거리에서는 어떤 행상이 생강엿을 대패로 밀어 팔고 있었다. 여기저기 서예용 붓을 진열해 놓았고 이름 모를 한자로 가득한 가게도 많았다. 종로 안국동은 바로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북쪽으로는 화동, 동쪽으로는 재동, 남쪽으로는 인사동을 두고 있는 안국동 역시 그 변화의 바람에 사실 오래 전 노출되었다. 낮은 주택가로 가득했던 골목에는 어느 새 찻집과 옷가게가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더욱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안국동 거리는 인사동과 삼청동이 버리고 간 일상(日常)이 묻어난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오면 풍문여고가 보이는데 풍문여고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담 길을 걸으며 안국동이 시작된다. 풍문여고와 덕성여고를 사이에 둔 좁게 나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여러 가게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저렴한 분식집도 있고 독특한 외관의 갤러리도 있고, 또 새로 들어선 찻집도 있다. 그러나 저마다 각자 들어선 가게들이 놀랍게도 하나로 어울리며 안국동만의 평온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새롭되 지나치지 않고 오래되었으되 옛 것에 매여 있지 않은 것이 이 근처 가게들의 특징이고, 또 그것이 안국동의 멋이다. 왼편에 아트선재센터를 두고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부터는 북쪽으로 종로구 화동이 시작된다. 아트선재센터는 경주시에 있는 선재미술관의 분관인데 90년대 말 현대식 건물을 지어 지금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사거리 오른편으로 보이는 정독도서관 자리에는 원래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다. 70년대에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고 나서, 이 건물을 그대로 인수하여 도서관을 연 것이 정독도서관의 시작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결같이 정독도서관의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정독도서관 서가에서 만난 황유진(28세) 씨 역시 주말에 생각을 정리할 일이 있을 때마다 정독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한 주를 정리한다.
“저도 삼청동이나 인사동이 주는 느낌을 좋아해서 종종 찾지만 때로는 혼자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할 일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안국동을 찾았던 것 같아요. 안국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느낌이 더 차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거든요. 여기 정독도서관도 그래서 주말이면 종종 찾았구요. 물론 도서관까지 오는 길은 집에서 멀고 조금 불편하지만 한 번 여기 오면 몇 시간이고 조용하게 있다가 갈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또 주말이면 가족들이 아이를 데리고 정독도서관을 찾아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도서관 앞마당에서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발야구를 하며 놀거나 여름이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고등학교와 정독도서관은 이 거리가 단지 데이트 장소나 멋진 찻집만 있는 곳으로 바뀌지 않는 이유였고, 때문에 안국동은 오늘까지 단단히 그 중심을 잃지 않아왔다. 안국동 근처의 찻집을 찾는 시민들 역시 안국동의 변함없는 모습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많았다. 한 찻집에서 만난 박은지(25세) 씨는 안국동이 주는 느낌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일상’이라고 정의한다.
“대학 다닐 때는 학기 중에 바빠서 어디 다니지 못하고 대신 방학 때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 근처를 오곤 했는데,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이 그래도 안국동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인사동을 찾으면 반 년 전에 있던 가게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것에 놀라기도 했지요. 물론 안국동도 조금씩 변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교적 꾸준히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더 편했고, 어떤 새로운 가게가 있을까 설레진 않아도 뭐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오늘의 일상이 묻어나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저와 사람들이 안국동을 끊임없이 찾는 이유 같아요.” 안국동 역시 변화 속을 걷고 있다. 삼청동의 유명한 갤러리나 인사동의 소문난 찻집은 아니어도 꾸준히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고 조금씩 모던한 거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삼청동과 인사동과 다른 무언가를 안국동에서 찾는 이유는 이 거리가 자신만의 색깔을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설렘보다는 익숙함과 안락함으로 채워져 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국동을 가로질러 왔다. 나는 여전히 어제에 얽매여 있는 북촌마을이나 지나치게 새로워지고 있는 삼청동이 아니라, 묵묵히 오늘을 말하고 있는 안국동 거리를 가로질러 왔다. 나는 안국동을 걸으며 매우 온유하며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한 토막을 가로질러 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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