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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 프로젝트

MOON성元 2010. 3. 19. 18:00

 

 

 

‘엔터테인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용어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따분하다는 생각이 낡은 통념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를 보고 있노라면 이제 다큐멘터리는 엔터테인먼트의 한 분과가 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변화된 인식의 기저에는 마이클 무어의 신랄한 선동이 선각자 구실을 하였으되, 이제는 무어의 쇼맨십을 능가하는 새 얼굴들이 많아졌다. <예스맨 프로젝트>의 앤디와 마이크도 여기에 해당한다.
 
 
앤디와 마이크, 그들은 누구인가? 미국 시민단체 ‘예스맨’의 일원인 이들은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는 거국적인(?) 임무를 띤 사람들이다.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논리가 횡행하는 이곳의 매정한 이치를 폭로하기 위해 두 남자는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감행한다. 이들의 작당모의는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예스맨은 시장경제주의의 오류를 입증하고, 악덕 기업의 탐욕을 일갈하며, 습지 파괴에 앞장서는 정부의 실책을 폭로하는데 앞장선다. 유독가스 유출로 1만 8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인도의 보팔 참사를 나 몰라라 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 다우를 엿 먹이기 위해 다우 대변인 행세를 하며 BBC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근엄하기 짝이 없는 국제회의에 신분을 속이고 들어가 포복절도의 황당 퍼포먼스를 벌인다. 삽시간에 대기업 주가를 폭락시킨 이 희대의 사기극에서 조롱과 능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탐욕의 심장이다.
 
 
<예스맨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하는 영화이다. 사실과 진실의 기록에 엄격해야 할 다큐멘터리의 고전적 윤리는 여기서 그다지 존중되지 않는다. 영화 전체는 앤디와 마이크의 거짓말 작전을 다루고 있으며, 그들을 보여주는 영화의 형식 또한 지극히 유희적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 편집자로 참여했고, <예스맨 프로젝트>의 공동감독이기도 한 커트 엥페르는 “이 영화가 TV 토크쇼와 액티비즘의 이상적 조우를 시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형식을 패러디한 영화는 상대의 반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실행되는 기행으로 이루어진다.
커트 엥페르, 앤디 비츨바움, 마이크 보난노의 공동 연출로 완성된 <예스맨 프로젝트>는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처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의 즉자성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영화이다. 관객들은 처음에 두 남자가 벌이는 퍼포먼스에 집중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인해 조롱거리가 된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흥미로워진다. 두 남자가 일단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그들이 어떤 깨는 행동을 할 것인가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 관심의 초점은 익살맞은 저들의 기행이지만 다음에는 황당무계한 이 상황을 짐짓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반응이다.
 
 
일견 다큐멘터리의 기능과 영역을 확장하는데 일조했다고도 할 수 있는 <예스맨 프로젝트>의 성취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종일관 몰래 카메라와 화면 조작, 자의적 자료의 편집 등 전면을 도배한 이미지의 유희로 일관하면서 ‘사실에의 충실성’이라는 전통적 규범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뇌아들의 맹랑한 장난처럼 보이는 저들의 돈키호테적 행태에서는 일말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가짜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지도 않은 사람을 꾸며내 변장을 하고, 희한한 발명품을 고안하면서까지 이들이 정교하게 연출된 장난을 멈추지 않는 건 세상에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개그가 갖는 힘은 무엇일까? 커트 엥페르 감독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오히려 저들을 화나게 한다. 코미디는 문제를 더 가볍게 만든다”고 말한다. <예스맨 프로젝트>는 심각한 사회의 부조리나 정치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기업을 쳐다보고 비웃거나, 정부의 한심한 정책을 조롱하며, 사회지도층의 터무니없는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아름답지 못한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통렬한 인식에 도달하게 한다.
 
장병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