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긴 가로수길에 서서 - 거리의 재발견 ⑫ … 화랑로
늘 자동차로만 지나던 화랑로를 걸어보기로 작정한 것은 3월에 내린 이상적인 폭설 속을 달리다 마주친 눈부신 설경이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수령 짱짱한 플라타너스 가지마다 때아닌 눈꽃이 소복하게 쌓인 풍경은 장관이었다. 화랑대역 사거리에서 삼육대로 이어지는 화랑로는 서울에서도 가장 긴 가로수 길로 통한다. 여름이면 풍성해진 플라타너스의 큼직한 잎들이 녹색 터널을 만들고, 가을이면 플라타너스의 잎이 낙엽이 되어 수북하게 쌓이는 낙엽거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7호선 태릉입구역~6호선 화랑대역~육사~태릉선수촌~삼육대에 이르는 8.6km의 화랑로는 사계절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지만, 인적이 드물어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까지 벗 삼는다면 인적이 적어 한적한 교외에 나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호젓한 곳이다. 6호선 화랑대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삼육대 앞에까지 간 후 화랑대역까지 다시 내려올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삼육대는 조선왕릉 중 하나인 태강릉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어 수려한 교정을 자랑한다. 삼육대를 기점으로 오른편을 택해 플라타너스 나무가 즐비한 가로수 길로 접어들었다. 인도는 걷기 좋게 널찍하고 산책과 운동에도 적합해, 담소하며 산책하거나 운동에 심취한 주부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자전거전용도로도 만들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 길을 달리는 자전거마니아들도 만났다. 계절적으로 꽃과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화사해지는 시기이지만 키 큰 플라타너스는 은회색의 멋진 가지와 동그란 열매만을 하늘 높이 매달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스러운지 시선은 자꾸 하늘로 향했고 카메라 앵글에 그 모습을 담기게 분주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발길을 옮기자 반가운 현수막이 하나 보였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우리 선수단의 선전을 축하하던 현수막이 이곳 화랑로에 위치한 태릉국제스케이트장과 태릉선수촌에 걸려 있었다. 온 국민을 살 맛 나게 했던 감동이 그대로 다시 전해지는 듯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조금 더 가로수 길을 따라 내려가자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념으로 지난해에 개관한 조선왕릉전시관과 태강릉이 보였다. 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조선 왕릉 전반에 대해 세세하게 시청각 자료를 살필 수 있는 전시관과 사철 푸른 소나무가 많은 태릉을 돌아보았다. 또한 맞은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관광안내소에서는 견학일정(화~일요일, 10시ㆍ14시ㆍ15시)에 맞게 육사탐방을 할 수도 있다. 육사는 2008년부터 학교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 육군박물관, 군사박물관, 야외 무기 전시장 등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에 화랑연병장에서 시행하는 화랑의식은 예복을 입은 육사생도들의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좋다.
화랑로를 이색적이게 하는 또 하나의 시설물은 경춘선 철도와 철도 건널목, 그리고 경춘선의 간이역 화랑대가 있다는 것이다. 역시 키 큰 플라타너스가 늠름한 장관을 만들고 있는 가로수 길을 따라 2백여 미터를 들어가니, 잘 생긴 노송 몇 그루 뒤로 지붕이 비대칭인 역사가 눈에 들어 왔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공간 같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화랑대역은 경춘선 복선전철공사가 완료되면 2010년 12월 24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의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다행히 역사 건물은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이 자리를 지키게 된다. 외관이 깔끔하게 정비된 화랑대역 대합실 안 풍경은 의외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하루에 상행선 네 번, 하행선이 세 번밖에 정차하지 않는 역이지만 대합실은 정겨움이 넘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한 쪽엔 방금 전까지 누군가 피아노를 쳤을 것만 같이 피아노 뚜껑이 열려 있고 악보도 펼쳐져 있었다. 벽면의 그림과 책장, 소파는 물론 원탁의 큰 통나무 탁자와 여러 개의 의자에다 커피와 녹차를 타서 마실 수 있는 커피포트와 물, 컵까지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기차가 오지 않을 경우 잠시 선로 위를 걷거나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마침 남춘선에서 청량리로 들어오는 기차가 서고 사람들이 내렸다. 차를 타고 스치며 지나치는 풍경과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더 세심한 시각으로 대상물을 볼 수 있으니 감동은 배가 되고, 시각은 더 따사로워진다. 더욱이 화랑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볼거리는 작정하고 떠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의 : 화랑대역 02) 978-7788/ 조선왕릉전시관 02) 972-0370 / 육사관광안내소 02) 2197-6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