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대학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거리의 재발견 ⑭ … 신림동 고시촌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가고자 했던 신림동 고시촌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3번 출구로 나온 수많은 학생들이 바로 앞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줄 서 있지 않은가! 이상하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봉천동이구요. 저기 오는 5515번 버스를 타세요”란다. 무조건 올라탔던 버스는 꽃들이 만개한 서울대 캠퍼스 일대와 정문 로터리를 지나갔고,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정류소가 있어 묻지도 않고 그 곳에서 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간판은 '사시, 행시, 외시'였다. 우회전하여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도 역시 골목 안은 '고시, 독서실, 중고서점, 고시자료 전문'과 같은 간판과 광고물들로 전봇대 전선만큼이나 어지러웠다. 좌측 골목들도 비슷한 풍경들이었다. 옷차림들도 양복에 넥타이 맨 사람들보다는 편안한 평상복이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더 많았다. 지난 3월 7일, KBS 2TV에서 [별을 따다, 신림동 고시촌 3일]이라는 주제로 사법고시 1차 시험을 앞둔 신림동 고시촌의 3일간 풍경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 풍경들이 눈에 띄어 반갑고 익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큰길에서 대학동주민센터가 보였다. 분명 신림동 고시촌을 찾아 왔는데, 대학동주민센터라니……. 궁금하여 센터 안에 들어갔더니 김재갑 동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꿈을 이루는 동네! 대학동을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중략) 신림9동이라는 행정동명으로 출발했습니다마는, 2008년 9월 1일자로 대학동으로 행정동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가 위치하고 고시원이 밀집된 곳으로 지역사회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비슷한 간판들이 즐비한 골목들을 누비는데 고시촌 냄새가 나는 특이한 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고시 24, 성공하는 사람들, 꿈이룸 마트, 라면공화국, 秀 PC방 등등. 문득 오후 시간대의 PC방 분위기가 궁금하여 가만가만 지하로 내려갔다. 마침 사장이 호의적이어서, 차분히 고시촌의 분위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사장 스스로가 이 곳에서 10년 가까이 고시준비를 해왔던 당사자였음을 알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더 이상 생활비를 타 쓰기도 염치없고, 결혼도 해야 하고, 그리고 그 무렵 즐겨 찾았던 PC방은 성업 중이었고……. 그래서 고시를 포기하고, PC방을 운영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남학생들이 90%여서 PC방을 비롯한 오락과 유흥업들이 비교적 호황이었는데, 지금은 남녀 비율이 50:50이어서 이곳의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여성전용 고시원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남녀 비율로 문화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전업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영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했다. 고시촌에서 학생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먹고 싶다 했더니, 엄마 손맛이 그리운 학생들이 자주 찾는 소박한 식당으로 안내해 주었다. 옆자리의 학생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밑반찬이 깔끔하고, 찌개 맛도 아주 담백하여 금방 그릇을 다 비웠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PC방 장명철 사장으로부터 더 깊은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90년대만 해도 월 19만원이면 비록 책상 밑으로 다리를 뻗고 잠을 자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이곳 고시촌 생활이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고시원들이 많고, 식당이나 위락시설들도 고급화되고 있어 생활비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처럼 시골에서 농사 지어 고시준비 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잖아도 현금지급기 앞을 지나면서, 쌀자루를 떠올리며 격세지감에 빠졌는데…….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더니 고시촌 안 동네는 지대가 상당히 높았다. PC방 사장은 초창기 신림동 고시촌은 바로 저곳이었다며, 답답할 때 자주 올랐다는 뒷산으로 안내했다. 골목골목을 지나가는 동안 새 건물, 오래된 주택 할 것 없이 '빈방 있음'이 수없이 눈에 띄었다. 답답했다. 그래도 산에 오르니 봄꽃들이 화려하고, 마을사람들이 텃밭도 가꾸고, 관악산 등산로가 있어 사람들도 오갔다. 아랫마을과는 전혀 딴 풍경이었다. 아예 '고시촌공원'이라는 명칭으로 운동기구와 쉼터까지 마련돼 있고, 월드컵 경기장, 북한산, 도봉산, 남산타워 등이 한눈에 보였다. 담소를 나누는 몇몇 고시생들을 보노라니, 이곳이 저들에게는 서울 풍경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아니라, 하루속히 탈출하여 저 아래 빌딩숲에서 경제인으로 일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갔던 길과는 다른 골목으로 내려오는 동안, 곳곳에서 공사현장을 목격했다. '서울대 주변 걷고 싶은 거리' 조성을 위해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3월에는 대학동 산63-1번지 일대에 1만634㎡ 규모의 샘말공원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 일대가 예부터 물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 해 샘말이라고 불렸고 또 현재 인근에 샘마을 약수터가 있는 것에 착안해 향토사학자와 주민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정했다고 한다. 녹두거리라는 명칭도 궁금해서 물었더니, 80년대 동동주를 팔며 가난한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던 녹두집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참 운치 있고 모처럼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이름이다. 비오는 날은 더 장사가 잘 되는지 모르겠다.
문방구 앞에는 독서대가 가득 진열돼 있었다. 중고물품, 심지어 식권까지 판매하고 있는 벼룩시장과 빨래방, 고시 관련 정보가 가장 빠른 서점들, 그리고 편의점이 유독 많은 신림동 고시촌을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이곳과는 좀 다른 분위기의 찻집 한 군데가 눈에 띄었다. '茶緣'이라는 곳이었다. 직접 원하는 차를 서서히 우려마실 수 있도록 다기세트가 테이블마다 다 갖춰져 있었다. 고시촌에 좀 걸맞지 않는다는 무례한 질문을 했더니, 부모가 군대 면회 오듯 자녀를 이곳 찻집에 불러 머리를 맑게 식혀주기도 하고, 소규모 세미나도 자주 열린다고 한다.
5백 개의 고시원이 밀집돼 있고, 4만 명의 고시생이 여전히 수험준비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신림동 고시촌을 뒤로 하고, 고시촌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해서 버스길 중간에 있는 다리로 왔더니, 금색으로 화려한 ‘飛上’이라는 책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요즘은 아파트 앞에도 커다란 표지석들이 놓여져 있는데, 고시촌으로서의 관록을 생각하면 이런 조형물의 건립이 필요했겠구나 싶으면서도, 규모가 이렇게 커야 했을까, 라는 오지랖 넓은 생각도 들었다.
날이 저물어 서울대생들이 자주 찾는 녹두거리로 다시 내려왔을 때는 이미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술집에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 있는 저녁시간이었다. 지금 신림동 고시촌이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변화의 바람이 형설지공으로의 바람이기를 바라며, 젊은이들의 활발한 취업으로 고시촌도 활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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