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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향수 팔면 안 되니? - 인터뷰 … '향수 할아버지' 위영섭

MOON성元 2010. 6. 24. 16:22

‘명동’은 이름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세련되고, 신선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과거에는 경제 중심지로 멋쟁이들의 거리였고, 지금은 젊은 층의 유행문화의 중심지이자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곳에서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다. ‘향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위영섭 씨다.

 

남루한 공간, 250여 종의 향수로 꽃피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지. 당시에는 그냥 좌판에 가까운 노점이였어.” 위영섭(70) 씨는 잠시 시간을 되돌리듯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50여 년 전 일이다. 그는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하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명동 거리에서 조그만 좌판을 열었다. 초기에 판매한 상품에는 공구도 있었고, 비누, 샴푸와 같은 생필품도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군대를 지원했고, 그와 함께 좌판생활도 끝나리라 생각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오게 됐어. 그때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여기지.” 군대를 전역하고 직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직장 구할 때까지만 다시 좌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대 전에 일을 하던 곳은 번화가가 되어서 자리를 잡을 수 없어 그곳에서 먼 지금의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때가 1964년이다. 사람들의 취향이 변하는 것에 따라 비누에서 스킨과 로션으로, 그리고 향수로 조금씩 종목도 바꿨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함께 사치품인 향수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70년대에는 스킨, 샴푸, 화장품 같은 건 굉장한 사치품이었지. 나도 한 두 개 정도 가져다 놓고 파는 수준이었어.” 당시에는 화장품 가격이 높은 편에 속해서 그도 한두 개 정도만 가져다 놓고, 팔리면 또 구해오고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수입업체들과 긴밀하게 발전해 오다보니, 수입업체에서도 이제는 향수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현재 그의 가게에는 수많은 업체들의 다양한 향수들이 일목요연하게 진열돼 있다.

손님들이 지어준 별명이 가게 이름이 됐다

“물건을 팔아주러 오는 손님들은 다 고마운 분들이지. 그래서 나이가 어려도 때론 기분이 나빠도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조금씩 입에서 입으로 알려진 게 아닐까 생각해.” 4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명동에서 일을 하다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같은 자리라고는 했지만, 점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속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엄연한 가게라고 인정을 해 주었다. 게다가 2000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된 뒤에는 작은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고. 그런 변화의 중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향수 할아버지는 아마도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15년 전부터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향수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별명이 마음에 들어서 간판도 그렇게 바꿨어.” 그렇게 가게와 함께 향수 할아버지인 위영섭 씨도 나이를 먹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흰머리가 생기고, 주름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향수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향수 할아버지 이거 얼마에요?’, ‘향수 할아버지 소문듣고 왔어요.’ 간판도 없이 그냥 명동 어디에 있는 향수 가게였던 곳이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향수 할아버지’ 가게가 됐다. 그는 손님들이 지어준 이름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에 든다고 한다.

“가게가 작고, 인건비가 안 들어가니까 가격이 백화점보다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 건 무엇보다도 ‘믿음’ 때문이 아닌가 해.” 시간이 지나면서 장사에 대한 철학도 생겼다. 작은 점포의 경쟁력은 값싸고 좋은 물건을 믿음을 가지고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장사를 하면서 많은 수입업체로부터 직접 물건을 공급받아 좋은 물건을 팔 수 있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의 하나라고.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믿음’의 다른 말은 ‘친절’이라고.

“겨울에는 따뜻한 향이 잘 나가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향이 잘 팔리지.” 향수 할아버지는 향수의 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판매되는 향수를 보면 사람들이 어떤 향수를 선호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향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자신의 느낌, 분위기를 전달하는 좋은 매개체라는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다면 향수를 한번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 명동의 진한 향수(鄕愁)가 된 가게

“가끔은 아주머니들이 ‘할아버지, 아직도 여기 계세요?’라고 묻기도 해. 사실 많은 손님을 만나다보니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중년의 아주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명동에 놀러왔다가 이곳에서 향수를 구경했던 사람인 거야.” 오랜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어린 시절 명동에서 향수를 구경하고 지나던 학생이 시간이 지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할아버지를 알아 본다. ‘아저씨는 하나도 안 변했네.’, ‘아직도 여기서 장사하세요?’ ‘나 그때는 정말 가지고 싶은 향수가 있어서 맨날 들렀는데…….’ 말을 마치면 함께 쇼핑 온 딸이나 아들에게 하나 사라고 권한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지.”

“하지만 가게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웃음) 향수 할아버지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70년대, 80년대부터 함께 일했던 노점 상인들을 주변 골목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젠가부터 하나둘 떠나 버리더니, 이제는 혼자 남게 됐다고. “이제 바라는 건 지금처럼 가게를 통해서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것뿐이지.” 그래서 그는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가게에 나올 생각이다. (그는 현재 건강상 10시부터 2시까지만 일을 하고, 이후에는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명동의 오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수 할아버지’, 그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바라며 한편으로 '향수 할아버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민기자/김정상 
amorfati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