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記者랑] 강우석 감독, 그가 큰 도둑인 이유
강우석 감독의 신작 '이끼'(7월 14일 개봉)를 보면서 기자는 10여년 전 한 방송사에서 내보낸 '특명! 아빠의 도전'이란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갈수록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는 우리 내 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던 '아빠의 도전'은 특히 일주일동안 한 가지 주제의 도전과제를 아버지가 달성해야 하는 미션이 화제를 모았다. 이 도전을 달성하게 되면 온 가족이 원하는 푸짐한 선물을 받게 돼 아버지들은 치열하게 도전에 임했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오랜만에 "아빠"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 사진=강영국 기자
'이끼'를 보면서 강우석 감독을 떠올린 것은 바로 강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강우석'이란 이름을 말하면 '코미디'나 '액션'이라고 답하게 되기 마련.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시리즈가 코미디 쪽이라면, '공공의 적' 시리즈나 '실미도'(이 영화를 액션에 넣기에는 좀 무리수가 있지만...) 등의 영화가 액션에 포함된다. 이 때문일까. 혹자는 강 감독을 '한국 코미디 액션 영화의 선구자'라고 했고, 그를 대표하는 코미디나 액션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다만 코미디나 액션 영화라는 특성상 작품성 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아쉬움은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잘하는 혹은 잘 아는 분야를 제쳐두고 새로운 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게다가 원작이 만화인 '이끼'라는 것에 더욱 놀랐다. 만화가 영화로 옮겨지는 것을 싫어하던 그였기에, 더구나 장르 또한 스릴러였기에 더욱 그의 선택은 의문이었다. 심지어 일부 영화 관계자들은 "강우석 감독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감독은 그 특유의 뚝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의 짱돌을 다 받아내며 극장에 스크리닝하는 날만을 손꼽았다.
결국 그의 장담은 그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역시 강우석이구나"를 재확인 시켰다. 워낙 말솜씨가 뛰어난 강 감독의 화법은 간혹 허풍선이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번 만큼은 허언이 아니었다. 언론시사회를 마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국내 영화 시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짝~짝~짝!'. 잠시였지만 분명 박수소리가 엔딩크레딧과 함께 들려온 것. 이 박수소리는 영화가 대단했다는 것의 의미도 있겠지만 강우석 감독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가 더욱 컸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강 감독의 최근작들은 아쉬움이 컸다. 2006년 '한반도',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도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그의 명성에 떨어졌다는 평가였다. 제작한 영화들도 마찬가지. '황진이' '신기전' '모던보이'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주유소 습격사건2' '용서는 없다' 등 이들 영화들은 큰 빛을 보지 못하며 이전 강우석 감독의 칼날 같은 제구력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닌가란 소리까지 나돌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놓은 '이끼'는 그래서 더 관심이 높았고, 강 감독은 보기 좋게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끼'를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이 강우석 감독 작품 맞나?'라고 반문할 정도로 연출 스타일에 변화가 있다. 실제로 강 감독 본인조차도 촬영 내내 어색해할 만큼 다른 연출법을 택해 '내가 하는 방식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는 뒷 얘기도 있었다. 그 변화의 화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말 그대로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전술이다. 거칠지만 스케일이 크고, 들숨날숨의 완급조절이 매력적인 강우석 표 연출에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과 한층 고급스러워진 영상미, 아울러 선과 악을 구분 짓는 독특한 페이소스 등은 강 감독이 새롭게 옷을 입힌 결과물이다.
물론 이 탁월한 결과물에는 강우석 감독의 조력자들이 대거 힘을 보탰다. 주연을 맡은 정재영의 강렬한 카리스마, 박해일의 알듯 모를듯한 묘한 내적 매력, 허준호 유준상의 미칠 듯한 존재감, 김상호 김준배 유해진의 울다 웃게 만드는 개성 넘치는 마력, 마지막으로 유선의 충격적 반전의 이중성 등은 강우석의 '이끼'를 집대성한 주인공들이다.
강우석 감독이 대표로 있는 시네마서비스가 영화를 시작하기 전 보여주는 인트로 영상에는 이런 글귀가 등장한다. '한국 영화를 이끄는 힘! 시네마서비스'. 언젠가부터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던 이 카피는 이번 영화 '이끼'로 다시 강우석 감독을 대표하는 문구로 바뀌었다. 또 영화 속 대사에 '가벼운 도둑은 겉을 훔치지만, 큰 도둑은 마음을 훔친다'라고 했듯, 강 감독은 결국 큰 도둑으로 다시 거듭난 모습이다. 영화 팬들의 눈과 귀가 아닌 마음을 훔칠테니 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장주영 기자 semiangel@mk.co.kr ]